(뉴스저널코리아) 김도영 기자 = 수천억 대장동 범죄수익 민사소송으로 회복?…법원은 '곤란'
대장동 '항소 포기' 관련 입장 밝히는 정성호 장관 (과천=ⓒ연합뉴스=뉴스저널코리아)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11.10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 이후 수천억원대의 범죄수익 환수 여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 금액을 구제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앞서 "공사가 민사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곤란해 보인다"고 판단한 만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 장관은 이날 정부 과천청사에서 가진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에서 "범죄수익환수규제법이나 부패재산몰수법에 의하면 몰수나 추징은 피해자가 없는 경우에 국가가 대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 사건은 피해자가 있고 2천억 정도는 이미 몰수보전 돼 있다"며 "피해자라고 규정된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이에 대해 민사 소송도 제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몰수보전은 범죄로 얻은 불법 재산을 형 확정 전에 빼돌릴 가능성에 대비해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도록 동결하는 조치다. 추징보전도 가능하다.
범죄로 얻은 불법 수익은 몰수하게 돼 있고 이미 처분해버리는 등의 사유로 몰수가 안 될 경우 추징한다. 각 경우에 대한 보전 조치는 유죄 확정시 집행에 앞서 미리 자산을 동결·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앞서 성남공사 측은 지난해 11월 대장동 사업을 시행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사업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내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공사 측은 민사합의부가 심리할 수 있는 청구액 범위(5억원 이상)를 고려해 일단 5억1천만원을 청구했고 이후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액수를 늘릴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 장관의 이러한 언급은 범죄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를 입은 '피해자'가 명확히 존재하는 사건에서는 검찰이 피해자 대신 범죄수익을 추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부패재산몰수법의 입법 취지와는 다소 어긋나는 지적이 나온다.
부패재산몰수법은 몰수·추징의 요건으로 '범죄피해자가 그 재산에 관해 범인에 대한 재산반환 청구권 또는 손해배상 청구권 등을 행사할 수 없는 등 피해 회복이 심히 곤란한 경우'를 들고 있다.
즉 범죄 피해자가 자력으로 금전적 피해 회복이 어려운 사안의 경우, 검사가 범죄 피해재산을 몰수 혹은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해(돌려줘) 피해자의 회복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1심은 대장동 사건으로 인한 범죄 피해가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른 범죄 피해 재산으로서 몰수·추징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했다.
그뿐만 아니라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등 민사소송의 기일이 1심 변론기일조차 제대로 열리지 않았고, 업무상 배임과 관련한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은 절차 진행이 중단된 상태인 점 등을 고려하면 이 사건의 피해 재산은 형사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어려워 보인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뒤늦게나마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검찰)가 개입해 범죄 피해 재산을 추징한 다음 이를 다시 피해자에게 환부하는 조처를 함으로써 신속한 피해 회복을 도와야 한다고 법원은 강조했다.
요약하면 피해자인 성남도시개발공사의 피해 회복이 어려운 경우로 보이므로, 검찰이 몰수·추징을 통해 피해 회복을 돕는 것이 타당하다는 게 법원 판단이다.
정 장관이 몰수보전 돼있다고 언급한 2천억원이 민사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그대로 남아있을지도 미지수다.
앞서 수사 당시 기소된 대장동 일당과 관련해선 약 2천230억원대 범죄수익이 몰수 또는 추징 보전됐다고 알려져 있다. 주요 피고인별로 김만배 1천250억, 남욱 514억, 정영학 256억 등이다.
1심 재판부는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들이 공모해 배임을 저지른 결과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택지 분양 배당금 중 최소한 약 1천128억원을 더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실제 추징금은 김만배씨에게 428억원만 부과됐다. 공사의 최종적인 피해액을 추산할 수는 있지만, 범죄 발생 시점의 배임 피해액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대장동 사업을 기획해 시작했으며 이익구조를 짰던 '설계자' 남욱 변호사·정영학 회계사는 아예 추징금이 없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추징금 '상한선'은 428억원으로 정해졌다. 형사소송법(제368조)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향후 2심과 3심에서 사정 변경이 생기더라도, 428억원 이상은 추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따라서 피고인들은 이를 토대로 향후 법원에 몰수보전 상태인 2천억원 상당의 재산 중 김만배씨 앞으로 된 428억원을 제외한 나머지의 '동결 조치'를 풀어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법원이 받아들인다면, 검찰이 어렵게 찾아내 몰수나 추징을 염두에 두고 일단 '굳히기'에 나섰던 재산들이 다시 '대장동 일당'에게 돌아가게 된다. 향후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민사 소송에서 승리하더라도, 다시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대장동 '항소 포기' 관련 입장 밝힌 정성호 장관 (ⓒ연합뉴스=뉴스저널코리아)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후 이동하고 있다. 2025.11.10
민사 소송을 통해 실질적인 범죄 수익 환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부패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찰 수사팀이 대규모로 투입돼 장기간 수사를 벌이고도 '428억원'을 추징하는데 그친 상황에서, 강제 수사권이 없는 성남도시개발공사와 법률 대리인단이 민사 소송으로 이보다 더 큰 금액을 환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통상 민사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을 받아내려면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는 성남도시개발공사나 성남시의 몫이다. 통상 이런 류의 사건에서는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나오면 해당 판결문과 그와 관련된 증거가 민사상 증거로 쓰이게 된다. 그러나 1심에서 상당 부분이 인정되지 않아 결국 '무죄'가 되면 환수가 불가능하다.
앞서 법원이 판시한 대로 이 사건은 관련 사건의 재판 진행이 매우 느리거나 사실상 정지된 상황인 만큼, 환수가 이뤄지더라도 그 시점이 매우 늦어질 개연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범죄수익환수 관련 업무 경험이 많은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은 권력형 부패범죄로 수천억원대 범죄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법원도 피해자의 자체적인 피해 복구가 어렵다고 본 사안"이라며 "민사 소송으로 피해액을 환수하면 되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대장동 '항소 포기' 관련 입장 밝힌 정성호 장관 (ⓒ연합뉴스=뉴스저널코리아) =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0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며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과 관련한 입장을 밝힌 후 이동하고 있다. 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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