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남진 "노래는 내 인생…정말 멋진 곡 남기고 떠날 것"
"옛 팬들 지금은 가족 같아…날 보는 얼굴은 그 시절 10대 소녀"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기자] = "젊을 땐 그저 '끼'와 '흥'으로 한 건데, 세월이 지날수록 노래가 내 인생이구나, 지금 이 나이가 돼 보니 내 전부구나, 그걸 알게 된 거죠."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가수 남진(79)은 '남진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스무살이던 1965년 가수로 데뷔한 남진은 내년이면 데뷔 60주년을 맞는다. 팔순이 다 된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아직 남아 있는 목표가 있느냐'라는 질문엔 "멋진 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정말 멋진 가사, 영원히 남을 수 있는 멜로디에 좋은 편곡을 거친 노래, 그 안에서 살다가 마무리하고 싶어요. 단 한 곡이라도 그런 것을 남기고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전남 목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남진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배우가 되려고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동갑내기 배우 임현식과 대학 시절을 함께했다.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던 그는 닐 세다카, 냇 킹 콜, 엘비스 프레슬리, 프랭크 시내트라 등 당대 팝 가수의 노래를 좋아했다. 어느 날 클럽에서 팝송을 불렀다가 눈에 띄어 가수의 길에 들어섰다.
노래 실력에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남진은 가요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10∼20대 여성 팬들은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공연장마다 따라다녔다. 그가 주연배우로 출연한 영화도 70여편에 달한다.
남진은 '젊은 시절 참 잘생겼더라'는 말에 "그때 인물 좋은 사람이 별로 없었던가 보다. 난 잘생겼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웃었다.
다음 달 4일에는 남진의 음악과 인생 이야기를 담은 콘서트 영화 '오빠, 남진'이 개봉한다. '님과 함께'를 비롯한 그의 히트곡을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들려주면서 그의 인생뿐 아니라 한국 가요의 역사도 풀어낸다.
남진은 "이번 다큐로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를 얻었다"며 "많은 팬의 사랑과 후원이 있어 오늘의 내가 있구나 하고 새삼 감사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준 것은 노력보다는 행운이라는 게 남진의 말이다.
그는 '금수저'로 태어나 20대에 인기 가수가 된 인생 역정을 돌아보며 "고생을 안 해 세상을 잘 몰랐다"며 "그렇게 가수가 되고 스타가 되니 깊은 맛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다시 무명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라며 "60년 전 히트한 노래를 지금 다시 한번 불러보고 싶다. (긴 세월 속에서 얻은) 깊은 감성으로 노래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빠, 남진'은 1960년대 말 베트남전에 파병됐다가 돌아온 남진이 당시 떠오르는 스타 나훈아와 라이벌 구도를 이룬 이야기도 비중 있게 다룬다. 지난 2월 은퇴를 시사한 나훈아는 오는 10월 마지막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남진은 "훈아 씨는 한참 후배로, 나이 차도 많이 난다"며 "당시 '흥행사'라고, 쇼를 기획하는 사람들이 기자들과 함께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다.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도 DJ(김대중)와 YS(김영삼), 그보다 멋진 라이벌이 어디 있나"라며 "다 시대가 만든 것"이라고 했다.
남진은 1980년대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백기를 맞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밑바닥부터 다시 출발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 히트곡 '둥지'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인생은 파도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이라며 "인기를 누려본 사람은 그것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고, 외롭고, 허탈한지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남진이 쓰러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것은 팬들의 사랑이다. 젊은 남진을 '오빠'라고 부르던 10대 팬들은 지금은 60∼70대가 됐다.
"지금 그분들을 만나면 팬이라기보다는 가족 같은 느낌이에요.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 그냥 팬과는 다르죠. 무대에서 노래할 때 나를 바라보는 그들은 60∼70대인데도 표정은 10대이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어요. 그 모습에 정말 감동하곤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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