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전기차 공포증…지자체마다 대책 골몰
충전율 제한하고 충전시설 지상화에 안전시설 전수조사 나서
전기차 보급에만 열 올리다 안전엔 소홀…과잉 반응 지적도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최근 대형 화재로 공포감이 확산하면서 전기차 지하 출입 문제를 두고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그동안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기차 보급에 열을 올리던 전국 지자체는 충전율을 제한하거나 지하에 있는 충전 시설을 지상으로 옮기고 안전시설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 지하 출입 두고 갈등…지자체가 전기차 충전율 제한 권고
전기차 화재에 따른 우려가 공포로 번지면서 지하나 타워주차장에 전기차 출입을 제한하는 아파트나 건물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하 깊숙이 위치했던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하 1층이나 지상으로 옮기는 건물들도 많은데 전기차의 지하 주차장 출입을 금지하는 아파트나 건물들도 생겨나면서 주민 간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기존 입주민 차량까지는 막지 못하더라도 신규 전기차 등록을 막는 아파트가 있는 한편 외부 전기차 출입을 금지한다는 현수막을 내건 아파트도 생겨났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의 고층 아파트는 지하 5층에만 전기차 충전시설이 있는데 최근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 아파트는 지상 주차장이 없다.
한 입주민은 "전기차 충전을 제한하거나 충전소라도 지하 1층으로 올려야 하는데 쉬운 문제가 아니다"며 "충전소를 올리면 내연기관 차주들이 주차 공간 부족으로 불편을 겪는데 아파트 차원에서 공식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놓였다.
전기차 차주 차모(39)씨는 "잠재적 방화범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며 "하이브리드차량도 똑같이 위험한데 파란색 번호판이 붙었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13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처럼 불안감을 넘어 공포감으로 번진 전기차 화재에 대응하기 지자체는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 등 일부 지자체는 전기차에 충전율 제한이나 일부 전기차 출입제한 조처 등 다소 강도 높은 대책을 내놓았다. 일종의 분쟁 해결 기준점을 제시한 것이다.
서울시는 충전 제한과 배터리 잔량 90% 이하로만 충전할 수 있도록 제한된 전기차만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게 권고할 예정이다.
충남도도 공동주택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충전율을 90% 이하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전기차를 여객선에 선적하지 못하게 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에이치해운은 9월 1일부터 울릉 사동항과 울진 후포항 사이를 오가는 울릉썬플라워크루즈호에 전기차 선적을 중단한다.
에이치해운은 전기차 불이 났을 경우에 대비한 완벽한 진압 장비를 갖출 때까지 전기차를 싣지 않기로 했다. 하이브리드차와 수소차는 선적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대책은 이미 판매된 전기차의 성능(주행거리)을 떨어트리는 대책이라 향후 지자체와 제조사, 소비자 간 법적 분쟁이 발생할 우려도 있고 강제할 근거가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 충전기 지상화에 보조금…안전시설 전수조사도
대부분의 지자체는 출입 제한 조처 등의 다소 강도 높은 대책 마련보다 여론을 수렴하며 정부 대책 발표를 예의주시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다.
청라 전기차 아파트 화재가 발생한 인천시는 전기차 화재 안전대책과 관련해 현재 종합대책을 마련 중인 정부에 지자체 차원에서 필요한 사항들을 건의했다.
인천시는 우선 지하 3층까지 설치할 수 있는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하 1층까지로 제한할 것과 기존 충전시설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옮겨 설치할 경우 국비를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앞으로 건설되는 전기차 충전시설은 화재 예방시스템을 갖춘 기종만 설치하도록 의무화할 것을 건의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기존 전기차 충전시설은 대부분 민간이 설치한 것이어서 근거 법령이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이 때문에 규제 강화나 예산 지원이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기차 보급률이 9%대로 전국에서 가장 높은 제주도는 지하 주차장에 소방 차량 진입이 가능한지 살피는 전수조사에 최근 들어갔다.
경기 평택시가 인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를 계기로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옮기는 아파트 단지에 최대 6천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1억5천400만원을 들여 도내 40개 공동주택의 전기차 지하 충전소의 지상화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부산시도 신규 아파트를 대상으로 건축 허가 때 실외 전기차 충전소를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전기 충전소를 지상으로 이전하는 등 여러 대책을 고심하고 있는데 지상화를 할 수 없는 아파트가 훨씬 많다"며 "우선 스프링클러 등 화재 대응 시설 점검을 통해 시민 불안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포항시와 포항시시설관리공단은 소화장비 보급에 나섰다.
시와 공단은 최근 남구청 주변과 포항종합운동장 주변 전기자동차 충전소에 화재 진압용 질식소화포를 설치했다.
광주시는 지난 9일부터 본청에서 운용 중인 관용 전기차 58대를 모두 지상에 세워두도록 했다.
또 전기차 충전 시설 39기 가운데 지하에 설치된 5기(의회동 1기 포함)를 당분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직원 개인 소유 전기차 현황도 파악해 지하 주차장 이용 금지 여부 등 방침을 논의할 예정이다.
◇ 공포증에 과잉 대책 우려도…"실효성 있는 장기적 대책을"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센터 통계를 살펴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전기차 화재는 총 139건으로 이 중 주차나 충전 중에 발생한 화재는 62건으로 44.6% 수준이다.
국립소방연구원이 지난해 발간한 전기차 화재 대응 가이드를 살펴보면 2022년 기준 차량 1만대당 화재 발생 비율은 내연기관차가 1.84대 전기차가 1.12대다.
차량이 정차된 상태서 화재가 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주차장이나 공터 화재 발생 비율을 살펴보면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보다 높지만 확연히 차이 나는 정도는 아니다.
국립소방연구원 등의 실험 결과에 따르면 화재 발생 시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가 더 큰 열 방출량을 보인다고 나타났다.
전기차 화재의 진압이 내연기관 차보다 어렵기는 하지만 출입을 통제하거나 전기차 충전시설을 지상으로 이전한다고 해서 대형 화재를 완전히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가 미래의 자동차가 되는 전 세계적 흐름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현실성 있는 안전대책을 세워 친환경 자동차 보급을 위한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향수 건국대 소방방재융합학과 교수는 "초점이 지하주차장에 있는 전기차는 위험하다는 데만 맞춰져 있는데 더 핵심적인 문제는 스프링클러 미작동, 전기차 화재 진압 인프라 부족 등에 있다"며 "부정적인 전기차 여론에 대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친환경 차량 보급이 계속될 수 있도록 안전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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