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수가 불균형' 손본다…진찰료 올리고 야간·응급 가산 확대
내년 의원 0.5%·병원 1.2% 수가 인상…'저평가' 의료에 재정 더 투입
의원 진찰료 4% 올리고 병원 야간수술 가산 100%·응급의료 150%로 늘려
병·의원 '수가 역전'도 일부 완화 기대…의협 "강력히 저항할 것"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 정부가 병·의원 수가(의료행위 대가)를 올리면서 진찰과 야간·응급의료 등 저평가돼 있던 의료행위에 재정을 더 투입하기로 했다.
의료기관 유형별로 일괄적으로 수가를 인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중증·응급 등 우선순위가 높은 의료 행위에 대한 보상을 강화하고, 수가 불균형도 바로잡겠다는 것인데, 개원의들의 영향력이 큰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24일 오후 올해 제1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내년도 의원·병원의 환산지수를 올해보다 각각 0.5%, 1.2% 인상하기로 의결했다.
정부가 건강보험 재정에서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수가는 의료행위별로 정해지는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한 값이다. 환산지수는 매년 건강보험공단이 병원, 의원, 약국, 한의 등 7개 의약 단체와 각각 협상해 인상률을 결정한다.
지난 5월 말 협상에서 치과, 한의, 약국, 조산원 등의 내년도 환산지수 인상률이 먼저 타결됐고, 당시 결렬됐던 의원과 병원은 이날 건정심에서 가결됐다.
건정심은 이날 병·의원 환산지수를 결정하면서 일괄적인 인상이 아닌 저평가 항목의 보상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기존처럼 환산지수를 획일적으로 인상할 경우 고평가된 행위는 더 크게 인상되고 저평가된 행위는 상대적으로 덜 인상되면서 보상 불균형이 더 심화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날 건정심에서 병·의원 환산지수 인상, 즉 수가 인상에 투입하기로 했던 재정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저평가된 항목을 집중 인상하기로 했다.
동네 의원은 환산지수 0.5% 인상과 함께 상대가치 분야에서 초진·재진 진찰료를 각각 4%를 올린다.
건보공단이 애초 의원에 제시한 수가 인상률 1.9%에 해당하는 재정을 투입하되 일부 재정은 기존과 동일하게 의원 전체에 적용하고 일부는 진찰료 인상에 투입하는 식으로 나눈 것이다.
병원의 환산지수는 동네 의원보다 더 높게 1.2% 인상하고 상대가치 점수에 반영되는 수술·처치·마취료에 대한 야간·공휴일 가산을 50%에서 100%로 확대한다.
병원의 경우 응급실에서 시행되는 응급의료행위에 대한 가산도 50%에서 150%로 확대하고 의원급에 적용되던 토요일 가산도 적용될 수 있게 했다.
이 역시 건보공단이 병원에 제시했던 1.6% 수가 인상에 해당하는 재정범위 안에서 일부는 환산지수 인상에, 나머지는 저평가된 분야에 투입하게끔 조정한 것이다.
조충현 복지부 보험정책과장은 "환산지수를 차등 적용하는 게 아니라 환산지수는 하나로 하되 환산지수 인상에 투입할 재원 일부를 저평가된 영역에 투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일괄적인 수가 인상과 동일한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수술, 진찰 등 저평가된 의료행위의 보상을 강화하고 행위간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 내년 병원 환산지수 인상률이 의원보다 높아 병·의원간 환산지수 격차도 다소 줄어들게 됐다.
최근 수가 협상 과정에서 의원의 환산지수가 병원급보다 더 많이 오르는 일이 반복되면서 의원과 병원의 환산지수가 계속 벌어져왔다.
그러다 보니 상급 병원에 대한 수가 가산(상급종합병원 15%, 종합병원 10%, 병원 5%)을 적용하더라도, 중증환자를 주로 보는 상급종합병원보다 동네의원 진료비가 높은 '수가 역전'도 나타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번 결정으로) 당장 병·의원 수가 역전이 해소되진 못할 것"이라며 "전문가들은 환산지수 인상만으로 역전 현상을 해결하기보다는 중장기 수가 개편 과정에서 상대가치를 같이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전했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수가의 두 축인 환산지수와 상대가치를 연계함으로써 합리적인 수가체계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시작한 데 의미가 있다"며 "저평가 행위에 대한 집중 보상 등 공정하고 합리적인 보상에 기반한 필수의료·지역의료 확충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수가 체계 개편을 근본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건정심은 이와 함께 외과계 의원에 대한 수가 개선방안을 의사회 협의를 거쳐 조속히 마련하도록 하는 부대의견도 의결했다.
건정심에서 결정된 의원·병원 유형의 환산지수와 상대가치 점수 조정 방안은 복지부 고시 개정을 통해 확정된다.
의협은 정부의 이런 방침에 즉각 반발했다.
의협은 건정심 결과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별도의 재정을 투입해 저평가된 유형의 수가를 인상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외쳤는데도 정부는 저수가에 허덕이는 일차의료기관(의원)을 다시 한번 짓밟았다"며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건정심의 유형별 환산지수 차등 적용 결정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명분도 없는 돌려막기 식의 수가 결정을 강행한다면 필수의료뿐만 아니라 일차의료까지 망가뜨리는 재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그에 대한 책임은 정부에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며 "의료계는 앞으로 법적 소송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무소불위 불통 정부에 강력히 저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건정심은 '비상진료체계 건강보험 지원방안' 연장을 의결하고, 약 1천890억원의 건강보험 재정 투입을 결정했다.
복지부는 의료공백 상황에 대처하고자 지난 2월 20일부터 비상진료에 건강보험 재정을 투입하는 중이며 이번에 여섯 달째 연장하기로 했다. 지원 기간은 오는 9월 10일까지다.
이로써 건정심에서 비상진료 유지를 위해 투입한 재정 규모는 의결한 것만 1조원을 넘겼다. 다만, 실제 비상진료체계 운영 지원을 위해 지급된 누적 건보 지원금은 지난 6월 말 기준 1천640억원 정도다.
복지부는 상급종합병원과 응급실이 중증·응급 환자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경증 환자를 병·의원으로 회송한 경우 보상을 강화했고, 중증 환자의 신속한 병원 배정에 대한 보상도 늘렸다. 응급실 진찰료와 심폐소생술 등 응급실에서 시행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보상도 확대했다.
복지부는 비상진료 지원과 현장 점검을 통해 응급·중증 환자 진료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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