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로컬프리즘' 주제로 닷새간 공연 풍성

개막공연은 임실필봉농악 재해석해 무대 올린 '잡색X'

"농악과 판소리를 토대로 새 장르 탄생, 세계로 진출"

'잡색X' 1막, 당산굿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개막한 14일, 한국소리문화전당 모악당에서 개막공연 '잡색X'가 무대에 올라 있다.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 어두컴컴한 무대 위에서 새 모양의 장식을 한 이방인 '새 부족'이 곰의 탈을 쓴 '곰 부족'을 무찌른다.

승리의 기쁨을 뒤로한 채 새 부족은 적장의 영혼이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면 공동체를 해칠 것이라는 무의식을 염려하며 적장의 영혼을 위로하는 구슬픈 상엿소리를 낸다.

대표적인 가을 축제에서 여름으로 무대를 옮긴 전주세계소리축제가 14일 개막공연 '잡색X'의 무대를 선보이며 닷새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전북 예술의 뿌리인 임실필봉농악을 소재로 한 잡색X는 1막 당산굿과 2막 샘굿, 3막 마을굿, 4막 판굿, 5막 대동굿으로 구성됐다.

무대는 마을의 우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세탁기와 그 우물에서 태어난 20명의 인간, 그들이 별자리를 예언하는 존재로 성장하는 장면 등으로 쉴 새 없이 전환됐다.

풍물 하면 단번에 떠오르는 신명 나는 음악은 3막이 가까워져서야 나오기 때문에 해금과 거문고 등과 섞인 전자음악이 자칫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삼색 띠를 두른 농악 의상과는 달리 새로운 정체성을 고민해나간다는 의미로 까맣게 분장한 얼굴로 무대를 휘젓거나 해녀복, 웨딩드레스 등을 입고 등장하는 연극적인 모습도 새로웠다.

하지만 이 덕분에 낯섦과 익숙함, 새로움 등 모든 것들이 한데 아우르며 힘차게 맺어지는 판굿의 의미가 더 선명해졌다.

또 풍물 속에서 악기를 연주하지 않는 잡색은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 비주류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공연의 주제 의식과도 맞물렸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양진성 임실필봉농악 보존회장은 "농악은 열려있는 넓은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간다고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52년간 풍물을 했는데 실험적인 무대에 충격을 받았다. 융합예술로서의 필봉농악이 새롭게 다가와 놀라웠다"고 평가했다.

마을의 우물 '세탁기'에서 태어난 인물들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개막한 14일, 한국소리문화전당 모악당에서 개막공연 '잡색X'가 무대에 올라 있다. 2024.8.14

이날 개막식을 필두로 올해 소리 축제는 '로컬프리즘, 시선의 확장'을 주제로 80개 프로그램, 106회 공연을 펼친다.

김희선 축제 집행위원장은 "'로컬'은 전북의 음악과 예술가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키며 세계로 나가겠다는 의미"라며 "풍물굿을 재해석한 개막공연으로 시작해 폐막공연은 판소리로 막을 내린다. 농악부터 판소리까지 전북의 예술을 담고 그 안에 오페라와 창극, 월드뮤직 등 담아서 다양한 음악으로 분화돼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이왕준 축제 조직위원장은 "전국적이고 세계적인 축제로 변모하기 위해 기존 가을에서 여름 축제로 전략을 바꿨다"며 "우리 전통 음악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공연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축제 대표 프로그램인 '판소리 다섯바탕'은 '시대의 명창', '올해의 국창', '라이징 스타' 등을 주제로 매일 공연이 이어진다.

판소리 국창 김영자의 '심청가'와 중견 명창 왕기석의 '수궁가', 채수정의 '흥보가', 이자람의 '적벽가', 박가빈의 '춘향가' 등의 무대를 만나볼 수 있다.

축제 기간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야외공연장에서는 시원한 여름밤을 모두 즐길 수 있도록 '소리썸머나잇'도 열린다.

대중성과 축제성이 높은 3개의 공연을 결합한 형태로, 매일 오후 7시부터 3시간 남짓 진행된다.

이날에는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음악을 결합한 '타란타켈티카', 남성현악 5중주 '볼로시'와 소리꾼 채수연의 이색적인 합동 무대 등이 진행된다.

15일에는 다양한 동서양 악기를 선보이는 '해금플러스'와 디제이 '타이거 디스코'의 무대가, 16일에는 레게의 윈디시티와 뽕짝의 대부 이박사의 공연이, 17일에는 바이올리니스트 대니구와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 등이 관객들을 만난다.

잡색X 3막, 샘굿 [뉴스저널 코리아=김도영] =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개막한 14일, 한국소리문화전당 모악당에서 개막공연 '잡색X'가 무대에 올라 있다. 

여름방학을 보내는 어린이들을 위한 인형극 '피리부는 리어카 할아버지', 희귀한 장난감 악기를 만날 수 있는 폴란드 밴드 '마웨 인스트루먼티' 공연, 서커스극 '목림삼' 등도 준비돼 있다.

지난해 호평을 받은 '전주의 아침'은 올해도 계속된다.

전라감영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함께 국악, 전통 무용, 월드뮤직 등의 공연이 마련됐다.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호남오페라단의 '녹두'와 산조의 음악적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산조의 밤', 평소에 접하기 힘든 아일랜드와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나라의 세계음악도 무대에 오른다.

축제는 18일 오후 6시 폐막공연 '조상현&신영희의 빅쇼'로 막을 내린다.

익살과 재치가 번뜩이는 조상현·신영희 명창과 젊은 소리꾼이 함께하며 축제의 마무리를 장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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